몇 주전에 만난 안영일은 자신의 청춘이 끝났다고 한탄했었다. 그 말을 듣고 20대의 중반인 우리들이 너무 슬프더라. 신림동의 한 독서실에서 꿈을 꾸는 청년, 안영일을 불러냈다. 그리고 물어봤다.
안녕. 안영일. 자기 소개를 해달라.
냄고.
냄고?
냄새나는 고시생.
별로 재미없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나?
똑같다. 일어나서 도서실로 가서 책 펼쳐놓고 점심 먹고 낮잠자고 공부하고 학원갔다가 집으로. 다시 일어나서 아침먹고 도서실, 점심, 낮잠.
요즘 하는 고민은? 시험을 떠난 일상적인 고민말이다.
잠이 많아졌다. 아마도 독서실 의자가 너무 편해서 그런가보다.
지금까지 안영일의 인생 중 황금기는 언제인가?
5살 때 장난감 가지고 놀 때가 아닐까…싶은데.
아니, 고등학교 이후부터 지금까지 인생 중에서 말이다.
음….. 글쎄. 굳이 꼽아보자면, 신입생시절부터 군대 전 생각없이 놀 때까지. 우리의 나이또래라면 아마도 다 이때쯤이 가장 즐거웠던 때가 아닐까?
지금은 물론 황금기가 아니겠지만 지금 즐겁지 않은 이유를 하나 말해달라.
먹고 살기 바쁘잖아. 세상도 어느정도 알아버렸고. 너무 염세적이겠지만 어쩌겠나. 고시생이 그렇지 뭐.
나중에 시험이 붙으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뭐가 있나?
여행. 여행이 너무 가고 싶다. 일본여행.
왜 하필 일본인가?
최첨단의 기술과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 오타쿠적인 분위기 그런 것들 말이야.
일본은 별로다. 차라리 태국을 가라.
아? 그래? 일본이 별로야? 우즈벡키스탄이나 갈까? 그런데 태국 여자들은 정말 다 제시카 알바인가?
누가그러나? 꼬추달린 제시카 알바있을지도 모르지. 요즘 사고 싶은거 그런 거 뭐 없나?
별로 없는데. 요즘 옷에 관심도 없고. 그래도 고르자면 오토바이. 아니, 자동차. 통학수단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도다. 아! 시계. 시계 고장났다. 시계사고 싶다. 세이코나 알바정도로. 근데 비싸서….
다시 과천으로 이사간 기분이 어떤가?
드디어 학교 다닐만 하겠구나 싶었다. 지금은 휴학생이지만.
방금 옷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이 난건데 옛날에 우리가 ‘뺘숀킹’이라고 부르지 않았나.
말도 안돼는 이야기다. 내가 왜 빠숀킹인가?
아무튼 요즘 가장 ‘핫’ 한 브랜드는?
모르는데. 유니클로와 무지….정도?
역시 꿰뚫어보는 눈이 있다. 옷을 살 때 가장 고려하는 점이 뭔가?
아니, 뭐 질문이 이상하다. 이런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닌데. 이게 뭐 중요한가?
어허. 점심 안 먹어도 살아갈 수 있는데 점심 챙겨먹는 것과 같다. 그냥 대답해달라.
가격? 디자인 무난하면 사이즈. 아. 이상하다. 나는 심층 높은 인터뷰를 기대했는데. 인터뷰가 깊이도 없고 감동도 없다. 그만하자. 솔직히 너도 물어볼 것이 없지 않느냐? 다음에 준비 잘해와서 다시 하자. 나를 최정예로 다뤄달라.
그런 인터뷰는 손석희랑 해라. 요즘 고시 준비하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아니다. 요즘 줄었다.
왜?
자세히는 모르겠고. 수치를 보건대 그렇다. 하지만 내게는 준비하는 사람이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니다. 경쟁이 문제가 아니고 문제는 내가 요즘 너무 잔다는 것이다. 게다가 남들과 경쟁을 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래도 동안고 3학년 2반 1등 출신 아닌가. 자부심을 가져라.
자부심은 무슨. 기억나는게 있는데 성인이가 일등인가 내가 이등인가 했는데 평균 80이 넘지 않았다. 그런데 반 일, 이등. 전교점수는 형편없었지.
우리 반은 누가 봤으면 체대 준비반으로 봤을 것이다. 그래도 일등을 해본 경험이 있으니깐 물어보는데 남을 밟고 오르는 기분을 말해달라.
에엥? 그런거 없는데. 질문이 어렵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평생 누구를 이겨보겠다 생각해본 적은 없다. 원래 경쟁심이 없는 성격이기도 하고. 하지만 조성인이 잘나가는 꼴은 못 본다.
나도 그렇다. 성인이가 잘되는 꼴은 그 누구도 용납 못 할 일이다. 내가 볼 때 너는 친구를 잘 사귄다. 친구 사귀는 방법 좀 알려달라.
나도 낯가려서 잘 못사귀는데. 그냥 계속 보다보면 친구되지 않나?
우리들 중에 가장 결혼을 늦게 할 것 같은 사람은?
나.
왜?
아무래도 취직이 오래 걸리니깐.
연애 결혼 할 생각인가?
당연하지.
연애는 얼마쯤해야 결혼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 것 같나?
글쎄…1년 반에서 2년 반.
꼭 반이 들어가야하나?
그 반이 중요하다.
고시 공부하는데 두려움은 없나?
당연히 있다. 이게 또 힘든 길이기도 한데다 결과가 불확실한 인생의 승부이니깐.
나이가 한창인데 하고 싶은 것은 없나? 만약 고시공부를 안하고 있다면 말이다.
연애. 여행.
연애라….요즘 맘에 두고 있는 이성은 있나?
맘에 두고 있다 정도는 아니고 힐끗 훔쳐보게 되는 이성은 있다.
표현은 안하고?
응. 전혀 안하고.
왜?
기회가 없다. 절실하지도 않은데다 용기도 없고. 그리고 장소가 장소인만큼 그런 목적으로 다가가면 좋게 볼리가 없지 않은가.
슬픈데.
괜찮다. 효강이를 보면서 참는다.
여자친구가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
다크나이트도 보고 손도 잡고.
알다시피 나와 니가 속한 중앙대는 악연이 있다. 왜 그럴까?
내가 볼 때는 중앙대보다는 여자와 악연이 있는거다.
ㅅㅂ. 저번에 청춘이 끝났다는 말을 하지 않았나. 그 말 듣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 이렇게 청춘이 끝나니 슬프지 않은가?
청춘이 끝나는게 아니다. 20대가 끝나는거지.
그럼 20대가 그냥 지나가서 가장 슬픈 점은?
이 나이 때 무전 여행 같이 고생하는 여행을 못하는게 아쉽다. 기차여행도.
30대에 하면 되지 않는가?
기분이 틀리다. 그 시절에는 좀더 현실적인 인간이 되어있을테니깐. 낭만이 없지 않을까 싶다. 어릴때 해야 제 맛이지.
그러고 보니 너랑 여행간 적이 없다.
맞다. 없다. 아니. 있네, 있어. 수학여행.
수학여행도 슬픔 그 자체 아닌가.
아니 왜? 나는 그 때 빌려본 공포 영화 ‘헌티드 힐’을 잊지 못하고 있는데.
고등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가면 이 길을 다시 걸을 것인가?
아니. 더 잘해야지. 성적을 더 올려보고 싶다.
남을 밟고 오르는 카타르시스를 다시 느껴보고 싶은거겠지. 좌우명을 읊어달라.
옛날에는 loose control 이였는데 이제는 안빈낙도. 그리고 열심히 살자.
마지막으로 이름에 숫자가 들어간 기분이 어떤가. 01말이다.
뭐냐? 아무렇지도 않은데. 너도 만(10000)자가 들어가지 않는가?
응. 난 널 이긴 기분이 든다. 이런거구나 남을 밟고 오르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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